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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가 깃든 자연의 맛 사찰음식
산사에서 만나는 사찰음식은 수행자의 지혜로 마음을 채우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밥상이다. 무엇보다 건강한 생존과 궁극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때문에 불가에서는 식재료를 재배하는 일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일에 이르기까지 수행자들이 직접 행하며 모든 일을 수행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 또한 자연환경과 인간이 함께 살아감을 알려주고, 자연의 생산물을 자연의 순리에 맞춰 섭취하도록 가르친다. 음식을 먹으며 맛을 추구하기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를 되새기고, 식재료를 길러준 자연과 내 앞에 음식이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는 물론 음식을 베풀어준 시주자의 은혜에 감사하며, 정성껏 만든 음식을 평등하게 나눈다. 불교에서는 음식 먹는 것을 ‘공양’이라고 한다. 공양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많은 불보살과 자연, 그리고 뭇 중생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보살행 실천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사찰음식을 수행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을 두 축으로 한국불교의 전통과 문화,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홍보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특히 사찰음식은 2010년 9월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런던, 파리, 오타와, 베를린, 시드니, 밀라노, 브라질리아 등 매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만찬과 오찬, 체험행사 등을 통해 한국불교 세계화와 대중화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해 왔다. 템플스테이가 한국의 산사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반면, 사찰음식은 공간적인 제한이 없어 오히려 해외에 한국불교를 소개하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전통 식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한국불교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홍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콘텐츠다.
한국 사찰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유제품을 제외한 모든 동물성 재료를 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모든 생명이 서로 의지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집착에서 벗어나 조화와 공존의 세상을 만드는 수행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또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 등 오신채(五辛採)를 사용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능엄경’에서 이 ‘다섯가지 매운 채소’를 익혀서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고, 날것으로 먹으면 탐심과 진심, 치심이 생겨나기에 수행자가 결코 먹어선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몸과 입에서 냄새를 풍겨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불편을 끼치는 걸 방지하려는 의도도 담겼다.
자연재료만을 사용한다는 점도 사찰음식의 특징이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천연조미료는 버섯가루, 다시마가루, 제피가루, 들깨가루, 콩가루 등이 대표적이다. 각종 국물과 무침, 조림, 김치 등을 만들 때 이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영양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음식의 풍미감을 더한다. 오래전부터 사찰에서 사용해 온 이러한 천연조미료는 오늘날 만연한 각종 화학조미료의 폐해로부터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한국에서는 겨울에 식재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큰 눈이 오면 외부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는 산중 사찰에서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음식을 저장하는 방법이 발달했다. 또한 발효법을 활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다. 장류, 각종 장아찌, 초절임·소금절임·장절임 등의 절임류와 미리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튀겨서 먹는 부각류, 그리고 각종 김치 등이 그것이다. 저장음식은 사찰마다 특색 있는 음식문화를 형성하며 각각의 사찰을 대표하는 고유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무엇보다 건강하다. 지방과 단백질, 비타민, 그리고 각종 무기질이 풍부한 자연 친화적인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콜레스테롤이 현저히 낮은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은 지구환경의 오염을 줄여줄 수 있는 친환경적인 식문화다. 사찰음식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이와 같이 건강은 물론 맛과 멋,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갖춘 사찰음식은 한국불교 대표 문화콘텐츠이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민간 외교관으로서도 일익을 담당해 왔다. 평창동계올림픽,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등 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 때마다 선수들을 응원하고 정을 나누는 자리에는 언제나 호스트로 사찰음식이 등장했다. 또 재외공관 및 해외 한국문화원, 한국관광공사 해외지사 등이 주최하는 각종 홍보행사에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사찰음식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한국문화홍보원은 2016년 문화사업단과의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VIP 행사 등에 사찰음식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외교부가 우리나라 전통문화 홍보 및 공공외교 활성화를 위해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을 적극 활용하기로 협약했다. 한국불교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사찰음식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찰음식의 가치와 경쟁력은 해외 유명 조리학교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문화사업단은 해외 홍보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미국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를 비롯해 현지 유명 조리학교 셰프 지망생들을 초청해 특강을 진행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 르 꼬르동 블루 런던캠퍼스는 문화사업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사찰음식을 채식전문조리과정 정규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의는 사찰음식 전문가 법송 스님이 한국에서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런던의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찰음식은 최근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탄소중립 등 전 지구적 이슈로 건강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면과 체험의 기회가 줄어든 요즘 문화사업단은 온라인으로 사찰음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에 부응하고 있다. ‘사찰음식 챌린지’ ‘비건 인플루언서와 함께하는 사찰음식 체험’ 등 사찰음식 콘텐츠 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 누구나 편안하게 즐기고 배울 수 있도록 유튜브에 순차적으로 공개 중이다. 또 2020년 한·미얀마 수교 45주년을 맞아 주미얀마 대사관과 ‘실시간 온라인 사찰음식 홍보행사’를 개최했으며, 2021년에는 한국관광공사 프랑크푸르트지사와 협업해 독일 오피니언리더들을 대상으로 ‘한국 사찰음식 만들기’ 행사를 진행했다.
한편 조계종은 사찰음식의 전통과 특성을 보전하고 체계적으로 전승될 수 있도록 ‘명장’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사찰음식 명장에는 선재, 계호, 적문, 대안 스님이 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템플스테이 20주년, 한국불교문화사업단·법보신문 공동기획] 글로벌 명품브랜드 템플스테이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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