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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적문스님(평택불교사암연합회장, 평택 수도사 주지)
평택 괴태곶봉수대는 원효대사 자취 서린 성역 부분적으로라도 개방해야 국방의 의무도 중요하지만 주민의 고통 외면 말아야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서면, 멀리 서해바다 너머로 떠오르는 해돋이가 천년 고찰 수도사의 아침을 밝힌다. 그 바다 건너편에는 우리 선조들이 외침을 막기 위해 세운 괴태곶봉수대가 있다. 신라시대 혜초대사가 왕래했고, 원효대사의 깨달음이 완성된 이 땅은 호국과 수행이 하나 된 성스러운 도량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군사시설에 묶여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평택시 향토유적 1호인 괴태곶봉수대는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천년을 이어온 우리 역사의 숨결이며,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더욱이 수도사에서 불과 700미터 떨어진 이곳은 원효대사의 발자취가 서린 성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해군2함대 이전으로 인해 포승읍 원정7리 주민들은 30년 넘게 끊임없는 소음과 화약 냄새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총소리와 헬기 소리는 이웃들의 평온한 일상을 앗아갔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자비의 정신으로 볼 때, 국방의 의무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겪는 고통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역사문화유산까지 함께 격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DMZ조차 안보관광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재가 접근 금지 구역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봉수대는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그런데 그 봉수대가 오히려 주민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은 중도와 상생의 길을 가르치셨다. 국방의 중요성과 주민들의 삶의 질, 그리고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제주 강정마을의 민군복합항 사례처럼, 군사적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괴태곶봉수대를 일반에 개방하되, 보안이 필요한 구역과 분리하여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수도사와 봉수대를 연결하는 별도의 진입로를 조성한다면, 순례객들과 역사 교육을 원하는 시민들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방력 강화와 문화유산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지혜로운 방안이 될 것이다.
천년 전 원효대사가 이 땅에서 깨달음을 완성하며 남긴 가르침은 '화쟁(和諍)'이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다. 군 당국과 지역주민, 그리고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이 땅 모든 중생들에게 두루 미치기를 서원하며, 특히 오랜 세월 고통받아온 원정7리 주민들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괴태곶봉수대가 다시금 민족의 품으로 돌아와 교육과 영감의 터전이 되기를 발원한다.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다.
 적문스님(평택불교사암연합회, 평택 수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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