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는 852년(신라 문성왕 14년) 염거 스님께서 창건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661년(문무왕1) 원효대사께서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곳이므로 염거 스님께서 창건하기 전에도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수도사 근처 바위 굴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원효대사는 밤에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어 보니 바가지에 물이 들어 있는 것 같아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 물을 마시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보고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에 원효대사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였고, “심생즉종종법생이요, 심멸즉종종법멸”의 오도송을 남겼다.
창건 이후 사세가 크게 번창하였으나 도적이 들끓어 노략질이 심하고 승려까지 납치하는 일이 발생하여 절이 비게 되었으며, 산사태까지 나서 폐사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수도사는 852년(신라 문성왕 14년) 염거 스님께서 창건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661년(문무왕1) 원효대사께서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곳이므로 염거 스님께서 창건하기 전에도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수도사 근처 바위 굴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원효대사는 밤에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어 보니 바가지에 물이 들어 있는 것 같아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 물을 마시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보고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에 원효대사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였고, “심생즉종종법생이요, 심멸즉종종법멸”의 오도송을 남겼다.
창건 이후 사세가 크게 번창하였으나 도적이 들끓어 노략질이 심하고 승려까지 납치하는 일이 발생하여 절이 비게 되었으며, 산사태까지 나서 폐사가 되기도 하였다.